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유정복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민의힘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해 지방분권과 관련한 내용을 헌법에 담는 자체 개헌안을 마련하기로 하면서 그 내용과 쟁점에 관심이 쏠린다.
이른바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으로 불리는 이 개헌안에 대해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인 유정복 인천시장이 이달 안에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 개정안을 둘러싸고 예상되는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2월 중 분권형 헌법 개정안 마련"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은 5일 정국 안정을 위한 궁극적 방안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정치권 지도자들을 만나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 시장은 "과도한 중앙집권적 정치·행정문화를 분권형으로 만들어 가는데 초점이 있다"며 중대선거구제 및 상원제 도입 등의 개헌안의 큰 틀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유 시장은 앞서 지난달 1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도지사협의회 신년 기자회견에서 업무 계획을 공개하며 "2월 중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16년부터 논의된 '분권형 헌법 개정안'
유 시장이 강조한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가 진행되던 2016년 12월 제20대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를 구성하면서 지방분권과 정부형태, 기본권 등 주요 과제를 대상으로 개헌 논의를 진행했지만 실질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공무원 수천명에 대한 인사권과 한해 수조 원을 주무르는 예산편성권, 지방정치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력까지 겸비한 시·도지사들의 몸집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어 2017년 10월 문재인 정부이 자치분관 추진을 위한 지침을 발표하고, 분권 실현을 위한 지방분권형 개헌 방안을 마련하면서 급물살을 탔지만 이 역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 선언 여부가 핵심
당시 분권형 헌법 개정안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이 논의됐는데 이 내용은 2017년 1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공개한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헌법 개정 논의와 과제" 보고서와 2021년 김수연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분권제도연구부장이 작성한 "지방분권개헌의 필요성과 주요 내용" 보고서 등에서 잘 드러난다.
해당 보고서들의 내용을 종합하면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의 쟁점과 과제는 △지방분권 국가 선언 △중앙과 지방간 사무배분의 원칙 △자치입법권 확대 △과세자주권 확대 △제2국무회의 신설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분권형 개헌안의 핵심은 헌법 총강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임을 선언하는 조문이 추가되느냐다. 지방분권 강화를 위해 헌법에 지방분권 국가라고 선언하는 게 상징성과 더불어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데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구의 넣는 문제를 놓고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다", "대한민국은 분권형 국가를 지향한다", "대한민국은 연방국가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문구가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지방분권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사무 배분·자치입법권·과세자주권 범위 이견 전망
이와 함께 '중앙-지방간 사무 배분'과 '자치입법권', '과세자주권'이 헌법에 포함되느냐도 지방분권의 정도를 가늠하는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사무 배분에 있어서는 현재 지방자치법 제8조(사무배분과 관련한 원칙)와 제9조(범위) 등이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두고 "형식적 배분일 뿐 중앙과 지방간 합리적 역할 분담까지 담고 있지 않다"는 의견과 "이미 충분히 역할 배분을 명시하고 있다"는 의견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자치입법권과 과세자주권 역시 비슷한 논쟁이 예상된다. 현행 헌법은 지자체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나 규칙 등 자치 관련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방자치의 성숙에 비해 자치입법권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해당 비판에 따라 자치입법권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마련됐지만 그 범위와 효력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 이를 두고 2017년 당시 연방제 수준의 독자적인 입법권을 인정하자는 의견과 기존 '법령의 범위 안에서'를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로 개정하자는 의견, '법률의 범위 안에서' 개정하자는 의견 등이 나왔다.
지방재정 역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지만 그 범위를 놓고 이견이 팽팽하다. 현행 헌법은 법률의 근거없이 세금을 부과·징수할 수 없는 '조세법률주의(조세의 부과는 반드시 법률에 의해야 한다는 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조세법률주의는 지방재정 확대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이에 따라 지방세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해 자치법류 등으로 부과·징수할 수 있도록 개헌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이른바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과세자치권'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지역별 '부익부빈익빈'을 우려해 국세와 지방세 구조를 개편하자는 의견 등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보충성의 원리' 적용 어디까지?
이 쟁점들은 헌법이 추구하는 '보충성의 원리'를 지방분권에 있어서 어느 부분까지 적용해야 하는가의 논의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충성의 원리는 "행동의 우선권은 언제나 '소단위'에게 있고, '소단위'의 힘만으로 처리될 수 없는 사항에 한해서 '차상급단위'가 보충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원리다. 이 원리는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되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안에 한해 최소한의 규제와 통제를 한다는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질서의 기초가 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이 원리를 지방분권에 적용하면 주민자치가 잘 행사될 수 있도록 지방정부는 주민들이 스스로 균형있고 유연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 이를 해결하는 기회를 일차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만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리로 해석된다. 중앙정부 역시 지방정부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되 이를 해결하기 어려울 때 보조적으로 역할을 한다는 원리다.
결국 지방분권과 관련해 우리 헌법이 어디까지 보충성의 원리를 허용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수준에 따라 지방자치강화형, 광역지방정부형, 연방정부형 등 지방분권 강화 수준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지자체장이 한 자리에' 제2국무회의 신설 여부도 주목
이밖에도 제2국무회의 신설 여부도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안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헌법은 국무회의의 구성원, 심의사항 등을 규정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참여 규정은 포함되지 않다.
현재 관행적으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여하고 있지만 나머지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제외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광역자치단체장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로 제2국무회의 관련 규정을 헌법에 포함하는 방안이 문재인 정부 시절 논의됐다.
제2국무회의는 국정 과정에서 지자체의 의견이 개진될 수 있어 분권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다만 이 규정은 헌법 개정보다는 현행 지방자치법 등을 개정해 국가와 지자체 간의 협력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으로 추진하자는 의견도 있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